바래진 그리움
솔향 / 손숙자
긴 여운을 남기고
바래져 간 색채는
내 그리움 이어라
세월이 벌써
이만큼 흘렀는데
숱한 사연 담아
거목처럼 앉아
오 갈 줄 모르는
화상의 흔적들
아주 바래지기 전
사랑했었는지
꼭 한번 묻고 싶다
지금도 가슴은
뜨겁게 뛰는데
애써 잡은 한 가닥 그리움
하얀 서리
이고 앉은 내 머리 위
곧 백설이 내려앉겠지
가끔은 / 서정윤
가끔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대 속에 빠져
그대를 잃어버렸을 때
나는 그대를 찾기에 지쳐 있다
하나는 이미 둘을 포함하고
둘이 되면 비로소
열림과 닫힘이 생긴다
내가 그대 속에서 움직이면
서로를 느낄 수는 있어도
그대가 어디에서 나를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해 허둥댄다.
이제 나는 그대를 벗어나
저만큼 서서 보고 있다
가끔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다
우리 약속했는데- / 黃雅羅
철쭉꽃이 피면
만나기로 약속 했는데
철쭉꽃 발갛게
피어 있건만
너는 어디에 있는지ㅡ
돌아보면 아스라이
멀고 먼 길
가슴으로 흐르는
그리운 정 못 잊어
무던히도 뒤척이던
뜻 모를 시간들-
지나간
우리들의 이야기
아득히 멀기만 한데
해맑게 웃음 나누던
그날 잊을 수 없어
철쭉꽃 그늘에 앉아
물결처 오는
그리움을 달래어 본다-/靜岸
둘이 될 수 없어 / 원태연
둘에서 하날 빼면
하나일텐데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고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어야 하는데
너를 더한 나는
둘이 될 순 없잖아.
언제나 하나여야 하는데
너를 보낸 후
내 자리를 찾지 못해
내 존재를 의식 못해
시리게 느껴지던
한 마디 되새기면
그대로 하나일 수 없어
시간을 돌려달라
기도하고 있어.
둘에서 하날 빼면
하나일 순 있어도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는거야.
꽃의 배후 / 정연복
어떻게 세상의 꽃들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가
세상이 어수선하고
세태는 변해 가는데도
해마다 제철에 꽃들이
어김없이 피고 지는
이 질서정연함을 다스리는
배후는 무엇인가
자연의 섭리인가
창조주의 손길인가.
나는 머리가 좋지 못하여
헤아릴 길 없고
그저 가슴으로
꽃의 아름다움에 반할 뿐이지만
가끔은 꽃의 배후가
슬쩍 궁금하다.
5월 / 이해인
찔레꽃 아카시아꽃 탱자꽃 안개꽃이
모두 흰빛으로 향기로운 5월
푸른 숲의 뻐꾹새 소리가 시혼을
흔들어 깨우는 5월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고 싶다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축제를
우선은 나 홀로 지낸 다음
사랑하는 이웃을 그 자리에 초대하고 싶다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 이정하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부르면 눈물이 날것 같은
그대의 이름이 있습니다.
별이 구름에 가렸다고 해서
반짝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대가 내 곁에 없다고 해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랑엔
늘 맑은날만 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구름이 끼여 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난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비가 내리겠습니까
어디서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가 뜨겠습니까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