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의 장미
- 세영 박 광 호 -
미색도 여전
향기도 여전
일과로 지쳐 돌아온 나를
아리따운 미소로 맞이한다
차 한 잔 곁들여
티 테이블에서 마주한 장미
어쩌다 낯선 이방인으로
내 앞에 서게 되었지만
한시적인 생명으로
날 사랑하는 모습
나도 다를 바 없는
한시적 생명,
그 소중한 삶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둘이서 마주보며 생각해 본다
잊으시구려 / 피천득
잊으시구려
꽃이 잊혀지는 것 같이
한때 금빛으로 노래하던
불길이 잊혀지듯이
영원히 영원히 잊으시구려
시간은 친절한 친구
그는 우리를 늙게 합니다.
누가 묻거든 잊었다고
예전에 예전에 잊었다고.
꽃과 같이 불과 같이
오래 전에 잊혀진
눈 위의 고요한 발자국 같이
그대에게 다 드릴게요
다감 이정애
그대여!
그대는 정녕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대하처럼 넓고 넓은 그대 품을 그리며
게 여운 눈빛으로 행여 그대 오실까 봐
에이는 마음 살며시 다독여 봅니다
뭐라고 말을 할까
콩닥댄 이 마음
든든한 나무 되어 그늘막 되어준 당신
줄이어 이어지는 고맙다는 그 말은
게으름 탓이려나 허공에 띄워 놓고
요염이 홀로 앉아서
기다리는 나는 바보.
가만히 / 정연복
매일 틈틈이 보는 베란다
창문 너머 나무들
몸을 흔들 때도 있지만
가만있을 때가 더 많다.
너른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흰 구름
흘러 흘러서 가면서도
가만히 멈춰 있기도 한다.
쉼 없이 움직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흐름의 대명사인 바람과 물도
가만있을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