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 / 정연복
매일 하늘이 내게 주는
참 좋은 선물
하루 스물네 시간의
오늘 또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머리맡에 놓여 있는
이 깨끗한 도화지에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할까.
유명 화가처럼
빼어난 그림을 그릴 순 없지만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도 행복도 그려 보아야지.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그림을 망칠까 겁내지도 말고
가슴속 붓이 가는 대로
즐거이 나만의 그림을 그려야지.
답이 없는 문제
- 세영 박광호-
인생이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가
긴 세월 무수한 사람들이
정의 했지만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하네
내 삶이 풍족하면 굶어도 배부르고
가난하면 먹어도 빨리 허기지니,
마음이 둥글고 모짐에 따라
세상도 달리 보이더라
부귀영화 별거드냐
마음먹기 달렸더라
노랫말도 있긴 하지만
누가 내게 일러
인생이 무엇이냐 물으면
선뜻 무엇이다 말 할 수 없어
하늘만 바라보게 된다
나는 아직 답을 모르니...
회초리로 때리듯
慈醞 최완석
초겨울
들녘에 남루한 옷 입고
허리 숙인 허수아비 어디 아픈가 봐
눈보라
휘몰아치는 이른 아침
메마른 풀잎 흔들릴 때 쓰러지겠네
매서운 칼바람
서리꽃에 머물더니
사시나무 떨듯 온몸은 오한으로 떨고 있다
모두를
품에 가두어놓고 회초리로
때리듯 지나는 겨울바람에 에이는 살결
은빛 찬란한
눈꽃 속에 고이 감추어 둔 사랑
봄이 와서 녹일 때까지 외로운 기다림
13서리꽃 / 沃溝 서길순
헐벗은 나목의 가지 마다
은백색 꽃이 피었습니다
낮이 수줍어 밤에 피었습니다
해님 부끄러워 사르르
지는 서리꽃
향기도 없고 꽃잎도 없는
바늘 같이 까칠한 촉수 꺾을수 없어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대가 뿌리치고 냉정하게
떠났던 자리에 풀잎마다
가시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숨겨진 뜻 / 石友 朴正載
잎 떨군 나뭇가지에는
월동의 지혜가 숨겨져 있고
뒹구는 낙엽 밑에는
봄에 나올 새싹이 숨어 있다.
사람아, 그대들 고통 속에는
희망이라는 꿈이 있으며
그대들 깊은 주름 속에는
인내라는 값진 구슬이 빛난다.
사람아, 무엇이 그리 조급하며
무엇이 그리도 부족한가?
떨군 나무, 뒹구는 낙엽
그들이 숨긴 뜻을 음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