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일기장 / 玄房 현영길
하루 휘청이는 달임 모습
어둠 밝히는 너
긴 여정 걷던 길 삶 발걸음 비춰 본다
하루 소중함 알기에
수많은 걸어온 그림자 때론 미음, 시기, 질투 하루
그 전방 분투한 나날들
내가 살기 위해 넘어야 했던 길 그 산 너머
임이 계셨다는 사실 잃고 살아온 나날들
좀 더 저 달처럼 세상 밝게 이해하고 살 수 없었을까?
사랑하는 임의 사랑 그려본다.
시작 노트: 일과 마감하고 달임을
벗 삼아 걸어오는 그 길임은
나에게 묻는다. 넌, 날 사랑하느냐고
긴 여정 속 늘 함께하신 그분임.
재를 느끼며 살았던 길이기에 난, 대답한다.
당신 그 사랑 먹고 살았습니다.
나의 발걸음 멈추는 날 기억해 주소서.
우연이라도 만나야 할 사람
여은 정연화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그대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우연이라도 만나야 할 사람
꼭 그래야만 할 사람
잔잔한 가슴에
떨리 듯
가느다란 파문이 입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참 바쁘게도 일상을 보내고 온
고즈넉한 겨울밤
그대의 일상은 어떠했나요
내가 그대를 그리듯
그대 또한 내 생각했는지
그대와 커피 한 잔의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지면 좋겠어요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그려만 보는 사랑
허락하지 않는 사랑
대면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그 또한 아파도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먼 훗날
여정길 어느 길 모퉁이에서
사실은 내가 더 많이 그리웠노라
말하는 사람이 그대였으면 합니다
세월 따라가는 걸까
다감 이정애
세월 따라가는 걸까
망가져 가는 육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저 잘났다
손을 드네
찢어질 듯 아픈 어깨
허리에 밀려나
입 다물고 앉아서
숨죽이고 있는데
그 누가 말려줄까
망가진 이 내 몸을
허리는 발발 떨며
무릎을 앞세우고
뒷걸음치며 숨는다.
大地의 겨울
- 세영 박 광 호 -
인간의 모태요
생명의 근원인 대지만이
인류의 때를 벗기려
자기 고난의 겨울을 자초하여
설야에 몸을 얼리고
검은 휘장 드리운 산자락 머얼리
병풍을 치고
동토의 부푼 아픔 겸허히 숨겨 안은 채
무한한 은총의 영광을
하늘에 돌리며
조용히 묵도를 하고 있다
만물을 대속한
땅과 하늘의 이런 교감으로
마음 저며 살아온
눈물 얼룩진 회한의 강을 넘어
인류의 봄은 다시 오는가 보다
겨울 노래 / 이해인
끝없는 생각은
산기슭에 설목(雪木)으로 서고
슬픔은 바다로 치달려
섬으로 엎드린다
고해소에 앉아
나의 참회를 기다리는
은총의 겨울
더운 눈물은 소리없이
눈밭에 떨어지고
미완성의 노래를 개켜 들고
훌훌히 떠난 자들의 마을을 향해
나도 멀리 갈길을 예비한다
밤마다 깃발 드는
예언자의 목쉰 소리
오늘도
나를 기다리며
다듬이질하는 겨울